“마마자국이있었으며, 성품이 유순하고 말씨도 차분했으며, 나를 얼싸안아보살펴준 것이 매우 정성스러웠다.”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(1681~1763)이네 살 때 숨진 유모 ‘승정’을 추억한 글이다. 나이 들어 도성 서대문길 옆에 묻혔다는 유모의 무덤을찾으려다 실패한 그는 유모를 생각하며 쓴 제문에 “다른 어미에게서 젖 먹여 길러질 때면 몹시 따르지만 장성하면 정성껏 보답하는 자가 없다”며 “죽을때까지 1년에 한번씩 제사 지내겠다”고 약속했다.
떠난이 그리워하며 쓴 글 모아 송시열·이익 등 진한 슬픔 표현 족보 샅샅이 찾고 각주 꼼꼼히
신해진(55·사진) 전남대교수(국문학)가 편역한<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의 미학, 애제문(哀祭文)>(보고사 펴냄)은 ‘가족’이라는 인연을 죽음 때문에 떠나보낸슬픔을 담은 책이다. 조선의 옛 선비 76명이 쓴 100편 글엔 부모와 형제, 친지뿐 아니라 노비, 첩 등과의 생전 인연도 스며 있다. 송시열(1607~1689)은 1682년 5월17일 여종이었던 구춘의 묘에 고하는 글을 남겼다. 중인 출신 시인홍세태(1653~1725)는 “명목상으로야 노비와 주인이었을지라도 정은 친동기 같았다”며 노비를 떠올렸다.
“당시가 계급·계층사회였지만, 노비와 첩까지도 사람 대접을 했던것을 알 수 있습니다. 떠나보낼 때 아쉬워하며 사람됨의 도리를 다했던 것이지요. 그런데 요즘 현대인들은 물질적 욕망만 좇을 뿐, 사람다운 구실을못하는 경우도 많잖아요?”
신 교수는 21일 “근엄한 존재로만 떠올리기 쉬운 선비들의 애제문에는입체적이고 종합적인 인간상이 그려져 있다”고 말했다.
성리학자 점필재 김종직(1431~1492)이 아내를 생각하고 쓴제문엔 평범한 일상인 같은 소회가 절절하다. “가난을 잘 견디고 전혀 이익을 도모하지 않았으며, 변변찮은 음식을 먹고 너절한 의복을 입어도 끝내 변함이 없었소.…그대가 짜고 신 맛을 맞추어 조리하니 콩잎무침 아욱국조차도 맛이 좋았었소.” “벼슬살이를 그만두고 산나물이나캐며 낚시질이나 하면서” 살려던 점필재는 “적막하고 쓸쓸한 서편 방”에 놓인 아내의 옷과 이불을 쓸쓸하게 바라보는 심경을 제문에 적었다.
이 책엔 조선시대 여인의 삶 등 생활사가 오롯이 묻어난다. 신교수는 “사소한 인물의 생몰연대인 숫자 8개를 알기 위해 문중에 여러 차례 전화하고 ‘대동보’와 ‘족보’도샅샅이 뒤졌다”고 말했다. 독자들의 이해를 도우려 각주를 꼼꼼히 달고 등장 인물의 삶을 재구성했다.